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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맥 컨서트

​토비 맥(Toby Mac)은 크리스챤 랩퍼이면 가수입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나 기독교학교인 리버티 대학을 나왔고, 한동안 DC Talk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토비 맥이란 이름으로 솔로로 오래 활동을 하면서 7번이나 그래미 상을 받았고 빌보드의 크리스챤 음악 부문에 1등을 한 곡들이 7개가 됩니다. 저는 저와 나이가 비슷하고 음악도 제 취향이라 예전부터 자주 들었고, 공연도 몇번 가보았습니다.  

토비 맥(Toby Mac)의 공연에 지난 주말 저와 4명이 다녀 왔습니다. 다 문화 생활인 미국에서 한국계 가정안에 살아가면서 문화적으로 이런 공연을 자주 대하지 못할것 같아서 조금 우려 하기는 했습니다. 같이 간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크리스챤 뮤지션 이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모님들은 어느정도 알고 있는, 또 좋아하시는 음악이라고 하셔서 힘이 났습니다.

눈만 뜨면 자기가 원하는 컨텐츠에 무한대로 빠져서 주체 할 수 없는 대로 세상에서 인도하는 생각과 사고를 쫓아가고 있는 어린 세대에 그들의 삶속에 몇시간 안되는 경험이지만, 조금 더 다른 크리스챤 문화를 경험할수 있도록 자신들의 시간을 내준 학생들, 또 그들을 보내주신 부모님들, 또 그러한 마음들과 시간을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10,000명이 모여 크리스챤 메세지를 같이 듣고 공감한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학생들에게는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사모함이 더욱 열리고 말씀을 받아들일때 더욱 진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할수 있는 마음의 밭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무대위의 공연자들을 바라보고 메세지를 듣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어린양 앞에서 구원 받은 자들은 다 그 광경을 목격할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 계시록 4:9-11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자 모임

마크와 스테이시 선교사의 집회에 약 120명 정도의 차세대 가족과 인도자들이 모였습니다. 불과 몇년전 영어 사역자 모임에 참석한 터라 오랜만에 이 지역의 영어 사역자들과 교제를 나눌 기대를 하고 참석했는데, 전혀 생각지 않은 사역자와 가족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모임에 함께해서 말씀과 기도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3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입맞추지도 아니한 칠천명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왕상 19:18) 이민 교회 에서 자라면서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하면서 혼자서만 씨름하는것이 아닌가 했는데, 그렇지 않고 많은 동역자들과 뜻을 같이 하는 자들을 이곳 저곳에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두번째는 (지난번에 말씀드린것처럼) 부부 선교사의 섬기는 자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를 매일 아침 준비했던 그 섬김의 꾸준한 자세가 8년이 지난 후에도 좋은 모범으로 다른 이들에게 주님을 전할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며, 섬김의 자세를 다짐합니다. 세번째는 기도 입니다. 선교사 부부의 기도와, 그 부부가 섬기는 단체가 함께 기도함과, 또 제가 그 선교사 부부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또 그런 섬김을 받은 자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기도 할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심을 확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중보해 주시는 기도를 믿습니다.

기도의 힘과 응답을 믿습니다. 오늘도 선교사님들을 기억하며 중국과 북한에 다시 문이열려 복음을 들고 들어가는 발걸음이 더욱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비전 여행 (관광)중 만난 사역자 부부

8년전 몸이 많이 아팠을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병가도 내고 휴가도 내고 해서 이곳 저곳 비젼 여행을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혹시 저의 삶속에 주님께서 다른 방향을 열어주시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몇군데를 다녀 보았습니다. 사실 북경에 갔을 때에는 비젼 보다는 관광의 목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북경의 한 선교의 집에 도착했을때, 저희와 함께 도착한 씨애틀에서 온 부부가 있었습니다. 형제는 주정부의 가석방 담당관으로 오랫동안 일하던 것을 마치고, 그의 아내는 치과 의사인데 선교의 목적으로 저희와 같은날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저희의 주목적은 관광이었기에 아침이면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려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아침마다 저희가 방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서 빵에다 딸기 잼을 정성스럽게 발라주며, 또 커피와 주스도 준비해 주며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떠나는날 짐을 주차장에까지 들어준 형제는 이상하게 만큼 저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종종 아침식사로 토스트에 딸기 잼을 발라 먹을 때마다, 그 형제를 기억하며 그의 선교사로서의 사역과 사역지를 위해 잠깐이라도 기도합니다.

8년후 그 형제부부를 이틀란타에서 만날수 있을것 같습니다. 어느 한번의 비젼여행의 마지막 즈음에 스치듯 만난 형제자매를 다시 한번 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마지막에 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다시한번, 8년후에, 새롭게 깨닫게하여 주시는 주님의 뜻을 살펴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장 40절

쿠키를 가지고 온 노엘이​

지난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에 올라와 오후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들이 몰려와서 문을 두들겼습니다. “대왕님, 노엘이가 쿠키 드린대요!” 너무 반가와서 문을 열고 맞이했더니, 노엘이 손에는 남은 쿠기 조각, 아주 조그만 부스러기 같은 한조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큰 조각을 친구들과 나눠먹고, 나중에 제 생각이 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노엘이는 씩씩하게 손을 내밀어 그 남은 조각을 저에게 주고 가지고 있던 봉지와 쿠키 가루가 뭍은 손을 털털 털었습니다.

몇달전만 해도, 아이들이 저를 무서워 했습니다. 몇달전 아이들이 이층에서 어른들 보호 없이 뛰어다니는것에 다칠까봐 놀라서 뛰지 말라고 경고를 주었더니, 뛰어 다니는것에 익숙한 조그만 아이들은 저를 보면 도망가고 숨고 피했었습니다. 이제는 괜찮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압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제 마음을 받아줍니다.  너무도 감사해서 이번주에는 제가 먼저 스프링클이 뿌려져있는 캔디 쿠키를 사서 노엘이에게 보답으로 주어 나눠 먹으라고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예뻐 죽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주고 엄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하시려고, 위험에서 영원한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를 멈추시려고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그래도 죽음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 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신것이, 그분 자신이 십자가의 대속의 희생하시며 우리를 사랑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을 두려워 하는것이 아니라, 그분을 알아가고, 그분에게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요한 일서  4:18

 

 

내 그리운 나라

91년도에 한국에서 결혼한 이후에31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약 7년전 북경과 연변을 가는길에 한국에 약 3일정도 머문것을 치면, 이번이 두번째 였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아버지를 보좌하느라, 제가 특별히 가고 싶은곳이나, 하고싶은것을 못한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듯이 이번이 당신 삶에서 마지막 한국여행이라고 하시니, 저는 무조건 아버지의 비서가 되어 어딜 가자고 하시면 모시고가고, 무엇을 먹자고 하시면 그것을 먹고, 혼자 기다리라면 대기하고 기다리는 것이 제 2주간의 시간이었습다. 저의 생각은 제 생각을 말하지 말고 무조건 아버지가 편하신대로 하시게 해 드리자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어릴적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던 김정옥 선생님, 임수자, 오길자, 박종안, 송태숙 권사님, 조봉래, 임유수, 이청노 장노님, 그리고 플로리다 대학에서 저를 여러가지로 이끌어 주신 유장렬, 서재명, 장동영 박사님들 등 많은분들을 다시 뵐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받은 그 사랑을 그대로 다음 세대들에게 나누어 줄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2주를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알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의 과거의 모습과, 지금의 생각과 감정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이 왜 아버지를 존경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몇년 남지않은 당신과 당신 아내에 대한 생각들을 알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감사했습니다.

 

한국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여의도의 숙소에 있었는데, 여의도만 해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습성도 달라지고, 편해진것도 많았습니다. 88년도 누나 결혼식때 한국에서 약 3개월 있었는데, 그 당시 임지훈이란 가수가 부른 노래 “내 그리운 나라”라는 노래를 많이 듣고 따라 부르며 방황도 많이 했었고, 그후 계속 ‘왜 더 기회를 만들어서 한국에 나가보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특히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래저래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게 살고, 또 무엇보다 하나님에게로 부터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들을때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고, 혹시라도 내가 자주 나오거나 연락을 하면서 서로 격려를 했으면 좀 나았을려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졌던 나의 자유시간에 나는 생명의 말씀사 (기독교 서점)에 2번 갔었습니다. 몇년전 내가 읽고 적지않게 영향을 받은 ‘존 파이퍼’ 목사의 “삶을 허비하지 말라” (“Don’t waste your life”, John Piper)라는 책을 12권 구입해서 교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함께 읽고 싶어서 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지수(James)의 색시감을 소개하신다고 하셔서 (아브라함 시대도 아니지만, 나중에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한명의 아가씨를 만나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아내 지은 엄마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 처럼, 고향을 떠나 하나님만 바라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온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삶을 허비하지 말라”의 책속에 아도니람 져드슨 선교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버마 선교사로 나가기전  자기가 사랑하는 앤과 앤의 아버지 (곧 장인어른이 될)에게 편지를 쓴 내용입니다.

 

같은날, 저드슨은 앤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앤 해설틴을 만난지 한달후, 저드슨은 앤에게 청혼을 하기로 했다. 저드슨은 자신의 삶이 위험하고 힘들 뿐 아니라 먼 타향살이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 미국에 돌아오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33년 후 단 한 번 미국에 돌아왔을 뿐,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앤은 저드슨과 함께 버마로 떠났으며 거기서 죽었다. 다음은 저드슨이 앤의 아버지에게 앤을 선교사의 아내로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다.

“이제 감히 여쭙겠습니다. 내년 이른 봄에 따님을 보낼 수 있으신지요? 어쩌면 세상에서 따님을 다시 보실 수 없을지 모릅니다. 따님을 보내시면, 따님이 어려움과 고난이 따르는 선교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보낼 수 있으신지요? 따님이 위험한 항해를 해야 하며, 남부 인도의 치명적인 기후를 견뎌야  하고, 모든 게 부족하고 궁핍한 가운데 살아야 하며, 무시와 모욕과 박해와 어쩌면 참혹한 죽음까지 견뎌야 하는데, 그래도 따님을 보낼 수 있으신지요? 천국의 집을 떠나 따님과 아버님을 위해, 죽어가는 불멸의 영혼들을 위해, 시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따님을 보낼 수 있으신지요? 따님을 영광스러운 세상에서, 의의 면류관을 쓰고, 따님을 통해 영원한 형벌과 절망에서 구원받는 이방인들이 따님의 구주께 올리는 우렁찬 찬양 가운데 따님을 곧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따님을 보낼 수 있으신지요?”

 

앞으로 아버지, 나, 지수, 누구든지 한국에 또 갈수 있을지 스치듯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과거에 많이 못가봤다고 아쉬운 마음이나 후회스런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아니 꼭 한국이 아니어도 앞으로 어딜 자주 여행 가던지, 갈수 있던지, 가고 싶던지, 더이상 상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 오셨던, 그리고 앞으로 오실것을 고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가기 전 주에 과테말라 (SETECA) 최남용 목사가 세계선교대회에 강의할 내용중 중남미에 한인 이민 역사를 선교역사로 다루는 내용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을 떠난 이민자로 40년 넘게 살면서 이곳 저곳 출장과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그리고 다닐때 마다 “주님,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기도를 많이 했지만, 항상 나의 마음은 미국에서 자라는 나와 같이 어릴때 모국을 떠나 자라는 아이들과 학생들에게 마음이 가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미국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로 보내신 것이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의 선교의 도구입니다. 더러는 미국이 무슨 선교지라고 그러느냐고 말을 하지만, 저는 미국이라는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새로운 삶들이 우리의 선교대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내 그리운 나라”는 한국도 미국도 아닌 하나님의 나라 라는 사실을, 또 그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역을 할수 있길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저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나님 앞에 오늘도 바로 서있으려고 발걸음을 바꿉니다. 우리 각자의 기도제목과 함께, 저와 샤인 사역을 기억하며 기도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러가지로 한국에 다녀와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직장도, 사역도, 가족도…. 무엇보다 아들 지수에 대해 기도를 많이 합니다. 부친도 여독에 고생을 하시고, 코로나로 또 두주 고생하셨지만, 지금은 온전하게 회복되셨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되는대로 서로 기억하고 기도하고 연락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의 피와 예수님의 피

사람의 몸의 신비는 대단합니다. 몸의 골수에서 1초에 약2백만개의 적혈구를 생성해 냅니다.  또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1500-2000 갤론의 혈액을 온 몸으로 펌프하고 있고, 생성된 적혈구는 백혈구, 혈소판과 함께 혈액으로 약 6만 마일을 혈관과 미세혈관을 돌게 됩니다.

피를 검사해 보면 우리의 몸과 건강상태를 보기도 하지만, 피를 보면 우리 창조주의 위엄과, 감탄할 만한 그 능력과 솜씨, 그 복잡하면서도 신비롭고 미묘한 놀라움 들을 알수있습니다.

새로운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되면, 아이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태줄은 신기하게도 서로에게 영양분이나 폐기물은 서로 교환 시키지만, 서로의 피는 처음부터 각각의 생명으로 독립적으로 구분이되고 서로 섞이지 않게 창조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등장하게 되셨지만, 그 생명은 우리 죄인인 모습의 인간 아버지나, 인간 어머니에게서 받은 생명이 아니고, 온전하게 죄 없는 독립적인 하나님의 영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선거 시절이 되면 생각나는 정체성

대학교때… 무작정 한국에서 온 형들이 좋아서 유학생 형들을 쫓아 다니고 있을때, 저의 모국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 개표 상황을 다같이 모여서 보고 듣고 있었을때인것으로 기억합니다. 끝까지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나선 김대중, 김영삼 두후보를 누르고 국민들은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아무말 없이 바라보는 형들도 있었고, 화를 내며 속을 삭이는 형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주제넘을수도 있었지만, 형들 앞에서 한마디를 한다는 것이, “그래도, 서서히 민주주의가 잘 잡아 가겠지, 몇번의 선거가 더 걸릴지도 모르지만,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완전에 가까운 자리잡기가 힘들겠지”라는 비스므리한 표현으로 형들있는중에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아주 친한 형중 한명이, “니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  한국을 떠나 이민을 오고, 군대도 가지않고, 국적도 포기되면서 미국인이 된 저는 그 말을 제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쩔수 없이 한국을 떠나 이민을 온 저는 미국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온 친구들과 고향땅, 모국을 많이고 그리워하고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었는데….

그 이후로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만 행동을 잘못하면, “교포 애들은 이럴때는 미국식, 저럴때는 한국식, 자기 편한한 대로만 행동해” 라는 말을 안듣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미국사람들과 어울릴때도 “저 사람들은 나를 과연 한국사람으로 대할까? 아니면 미국사람으로 대할까? 하면서 튀지 않도록 소심스럽게 살아왔던것 같기도 합니다.

40년이 지났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저와 비슷한 배경에서 자라는 학생들을 보면 그들과 같은 상황에 있는 동질감도 느끼며,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을까 하면서 걱정과 기도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이민을 간 아브라함이 새로 정착한 땅에서 태어나 이민 2세로 자라는 이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십칠세의 나이에 형들이 강제로 팔아서 이집트로 팔려가 서른 살이 되기까지, 부모 형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지낸 요셉의 기록은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이야기 입니다. 전혀 문화적으로 다른 바로의 왕궁에서 잘 자란 모세도 있고요.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 갔지만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두 정권이(나라가) 바뀌면서도 왕을 보위하는 믿음직한 다니엘의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학생들도 또 우리 모두가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갖을때 가장 든든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권, 영주권, 체류 상태, 국가, 정치, 민족, 직업이 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영원한 나라의 전능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 어디에 있던지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는 우리 학생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을 위해, 오늘 대한민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대표들도 하나님을 잘 알고 경외하며 두려워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멋진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가 되기를.

Leadership
Tim Lim
Lead Staff
tim@shineatlanta.org

Tim is a Korean-American and his parents immigrated to Jacksonville, Florida when he was 16 years old.  His father has been serving as a pastor for over 55 years.  Tim obtained a PhD in Chemistry from University of Florida and is currently working at 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in Atlanta.  Tim loves soccer, watching soccer and eating Doritos.  He is married to Grace Lim for 25 years and they are empty nesters with two grown children.  Tim is receiving his degree in Biblical Counseling in May 2017 and plans to enroll in a Masters of Divinity.

Grace has a heart for an authentic community and she enjoys genuine connections and fellowship.  She is working as the General Manager at the First Intercontinental Bank in Doraville, GA.   

Wallace Shaffer
Associate Staff
wallace@shineatlanta.org

Wallace was born and raised in Indiana County, PA, also grew up in a Christian family.  His birth-mother was a missionary to Japan in the early 1950’s and planted two churches.  He had the privilege of visiting them in 2015.  Wallace obtained a doctorate from National University of Health Sciences in Illinois and has been practicing as a chiropractor for over 20 years. He enjoys playing ice hockey, watching the Pittsburgh Penguins and eating pies and ice cream.  He is married to Mary Shaffer and recently moved to Georgia in the fall of 2016. Wallace has a strong interest in apologetics and his primary spiritual gift is service.

Mary has a heart for discipleship and missions and serves as a COO for a non-for-profit organization.  She enjoys meeting people from various backgrounds and all walks of life!    

Mary Shaffer
mary@shinealtlanta.org

 

 

OUR MISSION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주님의 주되심 (Lordship)에 온전히 순종하며, 각자의 삶이 공동체와 사회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나타내도록, 이 땅에서의 그 나라를 누리며, 나누며, 전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1. 개인 예배와 공예배, 기도와 말씀 묵상과 연구를 추구합니다.

  2. 진실된 성도간의 교제로 우리의 발끝이 다가가는 곳에서 헌신으로 섬기길 원합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꾸준한 제자 양육을 위하여 복음을 올바로 받아 들일수 있는 좋은 토양을 만들고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합니다. 

사역자
임 헌우
tim@shineatlanta.org

고등학교 1학년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 미국에서 자라는 이민 자녀들과 다음 세대의 어린 학생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잘 받을 수 있는 토양을 준비하고 가꾸는 사역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함께 사역할 일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Randy Lewis
randy@shineatlanta.org

청소년 사역자

​샤인 사역의 중고등부 사역을 맡은 랜디 루이스 입니다.

 

 

김 진방
james@shineatlanta.org

사랑하는 조국의 동포들 앞에서 말씀을 선포할 기회를 위하여 준비하고 기도하는 사역자 입니다.

​샤인 사역의 선교, 말씀, 방송, 행정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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